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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집중력을 100배 올리는 법
vicsteel
2008. 4. 25. 01:39
집중력을 100배 올리는 법
사람은 무엇에 흥미를 느끼거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절실감이 생기면 집중력이 생긴다고 앞에서 배웠다. 그렇다면 집중력을 위해 스스로 흥미를 일으키게 하거나 마음에 절실감이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큰 흥미를 느끼지도 않고 절실감도 일어나지 않는데 집중력만은 필요하다는데 있다. 일견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야말로 목마르지 않은 말에게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정말로 단비 같은 희소식이 있다. 정신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무엇에 흥미를 보이거나 절실감을 느낄 때 오히려 고요한 마음이 되고 특별한 뇌 에너지 형태인 알파(α)파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조절로 알파(α)파를 확보하는 기술만 터득하면 해결되는 것이다.
성적을 쑥 올리는 알파(α)파
집중력을 만드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알파(α)파의 확보이다. 알파(α)파는 잠재의식을 조절할 수 있는 뇌파대이며 잠재의식 속에서는 기억력, 집중력과 사고력, 이해력, 판단력이 효과적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또한 알파(α)파는 좋은 학습 효과를 가져오게 됨을 물론 심신이 지극히 편안하고 안락한 상태로 만들어 준다. 공부할 때 에너지 소비를 적게 하여 공부를 하면서 심신이 지치는 것을 미리 방지한다.
집중력을 이루는 힘은?
누구에게나 집중력은 있다. 그것이 발현되는 강도가 다를 뿐이다 "출세하기 위한 진로를 택하지 말고 소질과 적성에" 따라 진로를 택하라. 민사고의 세 번째 교훈이다. 이 말을 듣고 혹자는 당연한 소리라고 웃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말의 깊은 뜻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은 당연하며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문제는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새겨들어야 한다.
소질과 적성에 따라 공부하지 않고 출세하기는 어렵다. 남이 간다고 무조건 의대(醫大), 법대(法大)를 따라 가서 다 돈벌고 명예 얻고 잘사는 것은 아니다. 병원 임대료를 걱정하는 의사도 있고, 사법연수원에서 법관임용을 포기하고 중이 되어 버린 고시합격자들도 있다.
집중력이 필요하면 우선 그것에 흥미가 있어야 한다. 관심이 없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은 없다. 재미가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에 흥미를 기울이는 사람은 더더구나 없다.
첫째, 집중력은 재미로부터 온다. 흥미, 관심으로부터 온다했다. 그러므로 집중력을 얻으려면 내가 하려는 것을 흥미있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꼭 해야하는 것인데 흥미가 없으면 흥미를 일으키는 방법을 터득해야한다. 억지로 흥미를 유발시킬 수는 없다. 그것이 안 되면 자기를 바꿔야 한다.
졸업생 중 하나에 공부를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서 늘 공부와 함께 노는 것이 취미라고 할 만 한 녀석이 있었다. 대학 입학에서부터 수석을 차지하더니 재학 중 내내 수석을 놓치지 않고 있다. 자연히 교수들이 사랑을 독차지하고 집에서도 믿음직한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면 건강이 나빠지지 않을까, 부모들은 걱정했지만 그렇게 공부에만 몰두해도 건강(하루 30분 태극권을 한다)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미 공부를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공부를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책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강의를 듣는 것, 배운 것을 정리해 두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다 했다. 자연히 학우들과의 교외(校外) 만남은 멀어 질 수밖에 없었다. 관심 있는 상대도 있었지만 깊이 빠지지 않았으며, 담배도 그저 그렇고 친목을 도모(?)한다는 술자리에도 얼굴만 내미는 정도(1차)로 그치고 언제나 늦지 않게 기숙사로 향한다. 기숙사에 애인보다 더 좋은 책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무료해져 자신도 모르게 "아! 심심한데 공부나 해야지"라고 말하는 바람에 주위의 친구들로부터 "혹시 돌지 않았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친한 친구가 묻기를 "나는 너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어떻게 그렇게 공부에만 몰두 할 수 있지?"라고 물었다. 그 아이의 대답은 이랬다. "너는 여러 방면에 능력도 있고 즐기는 것도 많지만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공부밖에 없고 즐기는 것도 공부밖에 없어. 공부가 유일한 나의 취미야. "라 했다. 좀 심하다 할 수 있지만.... 대학을 졸업하면 유학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런 정도면 반정도가 아니라 사 분의 삼이나 죽을 각오를 해야한다는 미국의 유명대학도 그 아이에겐 재미있는 놀이가 되지 않을까?.
두 번째 집중력을 이끄는 것은 절실감(切實感)이다. 절실감 역시 집중력을 부르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하면 큰 이득을 얻는다거나 잘못하면 큰 낭패를 본다는 절실감이 있으면 집중은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우리에게 큰 절실감은 없다. 절실감은 부족함에서 오는 것인데 우리는 그리 부족함 없이 공부하기 때문이다. 온통 흥미를 끄는 것에만 마음이 쏠려있고 미래에 대한 절실감도 미미하다.
어찌 되었든 스스로 절실감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대로 주저앉는다면 미래는 뻔하다. 자기의 주관이 없이 남의 밑에서 남이 시키는 일이나 하고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예의 삶이나 같다. 노예에게 절실감은 없다. 시키는대로 어영부영 일만 하면 밥은 줄 테니까, 그들에게 혹 절실감을 찾는다면 "잘못하면 밥을 못 먹을지도 모른다는 것, 잘못하면 매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같은 동물적 절실감 뿐이다.
자신감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우선 집중력이 확보되면 자신감은 저절로 오게 되어 있다. 집중력과 자신감은 동행한다. 집중력이 있는 사람은 사물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리고 모든 면에 안정적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기성자(紀 者)가 주(周)나라 선왕(宣王)을 위하여 싸움닭을 길렀다.
사흘이 지나자, 왕이 기성자에게 물었다.
"닭이 이젠 싸울 수 있는가?"
"아직 멀었습니다. 공연히 허세만 부리고 사납기만 해서 자기 힘만 믿고 있습니다."
열흘이 지나서 왕이 다시 묻자,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다른 닭의 모습이나 목소리만 들어도 당장 덤벼들려고 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다시 묻자, 기성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은 아닙니다. 상대를 노려보면서 여전히 기운을 돋우고 있습니다."
다시 열흘이 지난 뒤 왕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다. 다른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도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이 마치 나무 닭처럼 보입니다. 그 덕이 온전해진 것이니, 다른 닭들이 감히 덤비지 못하고 도리어 도망칠 것입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 했다. 성공을 심으면 성공을 거두고 실패를 심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성공을 심을 것인가? 내 말을 깊이 새겨듣기 바란다.
성공을 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쉬운 것부터 반복해서 실제의 성공을 거두는 방법이다. 그것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속마음(내부의식)에 성공이 각인된다. 두 번째는 내가 강조하는 명상의 방법이다. 명상은 직접 속마음에 들어가 작용하므로 명상만 제대로 되면 실패를 삭제시키고 그 자리에 성공을 각인시키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속마음은 눈앞에 전개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인지 상상(想像) 속에 일어나는 일인지에 대한 구별능력이 없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그대로 신(神)이란 별명의 잠재의식에 입력시킨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그것이 심안(心眼)을 통해 상상으로 본 것이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력할 수도 있다. 입력이 반복되면 속마음이 입력된 내용대로 틀 잡힌다. 그리고 그것이 발현된다. 그것을 가리켜 현실세계라 한다.
칭찬으로 만든 자신감은 허깨비
사람을 만나면 의도적으로 무조건 칭찬부터 하는 사람들을 본다. 어린이에게 특히 그렇게 하는데 그것이 아이에게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란다. 물론 칭찬이 자신감을 준다는 것을 부정치는 않지만 나는 과도한 칭찬을 반대하는데, 그런 칭찬은 한시적이며 의존적이므로 허깨비 자신감을 부르기 때문이다.
나는 헛 칭찬을 거의 하지 않는데 남의 헛 칭찬을 듣고 헤벌쭉 하는 사람은 아직 유아(幼兒)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도 ㄱ, ㄴ, 정도를 쓰는 나이면 그 칭찬을 나에게 적합한지 입에 바른 헛 칭찬인지는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자신감은 심신이 건강해서 힘(에너지)이 넉넉해야 생겨난다. 그래서 나는 자신감이 필요하면 먼저 몸 수련을 하라고 권한다. 몸이 변하면 마음도 변하기 때문이다.
제자 중에 아주 소극적이고 만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여학생이 있었다. 늘 혼자 있기를 좋아하여 친구도 거의 없었다. 속으로는 남자친구를 원했지만 겉으로는 프로포즈를 하는 남학생을 피할 지경이었다. 그리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고 약간 통통한 몸집이었는데 나는 비만증이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함께 살빼기 작전에 돌입했다.
규칙적인 운동과 함께 물론 마음다스리기가 주 테마였다.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고는 살빼기인들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3개월만에 10Kg을 감량하니 탄력 있는 몸매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큰 성공은 자신감에 있었다. 체중과 반비례로 자신감이 되살아 난 것이다.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다. 만사에 적극적이 되었으며 남자친구도 생겼다. 성적이 덩달아 오르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다.
자신감은 성공체험으로부터
자신감에 제일 큰 힘을 주는 것은 성공체험이다. 확고부동한 자신감은 성공체험으로부터 온다. 이미 성공을 이룬 것에 몸을 사리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당연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공이 반복될수록 자신감은 점점 자란다. 오히려 실패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감에 장애가 되는 것은 실패체험이다. 실패감은 또 실패를 부른다. 실패체험이 머릿속에 남아있으면 성공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그것이 일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또 실패할지도 몰라" 라는 마음은 자신을 위축시킬 뿐이다. 성공하기를 바라면 그 마음을 조절하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는 성공률이 적다. 성공을 위해서는 먼저 내면에 각인된 실패체험을 삭제하고 그곳에 성공체험을 각인시켜야 한다.
사람은 무엇에 흥미를 느끼거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절실감이 생기면 집중력이 생긴다고 앞에서 배웠다. 그렇다면 집중력을 위해 스스로 흥미를 일으키게 하거나 마음에 절실감이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큰 흥미를 느끼지도 않고 절실감도 일어나지 않는데 집중력만은 필요하다는데 있다. 일견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야말로 목마르지 않은 말에게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정말로 단비 같은 희소식이 있다. 정신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무엇에 흥미를 보이거나 절실감을 느낄 때 오히려 고요한 마음이 되고 특별한 뇌 에너지 형태인 알파(α)파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조절로 알파(α)파를 확보하는 기술만 터득하면 해결되는 것이다.
성적을 쑥 올리는 알파(α)파
집중력을 만드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알파(α)파의 확보이다. 알파(α)파는 잠재의식을 조절할 수 있는 뇌파대이며 잠재의식 속에서는 기억력, 집중력과 사고력, 이해력, 판단력이 효과적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또한 알파(α)파는 좋은 학습 효과를 가져오게 됨을 물론 심신이 지극히 편안하고 안락한 상태로 만들어 준다. 공부할 때 에너지 소비를 적게 하여 공부를 하면서 심신이 지치는 것을 미리 방지한다.
집중력을 이루는 힘은?
누구에게나 집중력은 있다. 그것이 발현되는 강도가 다를 뿐이다 "출세하기 위한 진로를 택하지 말고 소질과 적성에" 따라 진로를 택하라. 민사고의 세 번째 교훈이다. 이 말을 듣고 혹자는 당연한 소리라고 웃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말의 깊은 뜻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은 당연하며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문제는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새겨들어야 한다.
소질과 적성에 따라 공부하지 않고 출세하기는 어렵다. 남이 간다고 무조건 의대(醫大), 법대(法大)를 따라 가서 다 돈벌고 명예 얻고 잘사는 것은 아니다. 병원 임대료를 걱정하는 의사도 있고, 사법연수원에서 법관임용을 포기하고 중이 되어 버린 고시합격자들도 있다.
집중력이 필요하면 우선 그것에 흥미가 있어야 한다. 관심이 없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은 없다. 재미가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에 흥미를 기울이는 사람은 더더구나 없다.
첫째, 집중력은 재미로부터 온다. 흥미, 관심으로부터 온다했다. 그러므로 집중력을 얻으려면 내가 하려는 것을 흥미있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꼭 해야하는 것인데 흥미가 없으면 흥미를 일으키는 방법을 터득해야한다. 억지로 흥미를 유발시킬 수는 없다. 그것이 안 되면 자기를 바꿔야 한다.
졸업생 중 하나에 공부를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서 늘 공부와 함께 노는 것이 취미라고 할 만 한 녀석이 있었다. 대학 입학에서부터 수석을 차지하더니 재학 중 내내 수석을 놓치지 않고 있다. 자연히 교수들이 사랑을 독차지하고 집에서도 믿음직한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면 건강이 나빠지지 않을까, 부모들은 걱정했지만 그렇게 공부에만 몰두해도 건강(하루 30분 태극권을 한다)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미 공부를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공부를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책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강의를 듣는 것, 배운 것을 정리해 두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다 했다. 자연히 학우들과의 교외(校外) 만남은 멀어 질 수밖에 없었다. 관심 있는 상대도 있었지만 깊이 빠지지 않았으며, 담배도 그저 그렇고 친목을 도모(?)한다는 술자리에도 얼굴만 내미는 정도(1차)로 그치고 언제나 늦지 않게 기숙사로 향한다. 기숙사에 애인보다 더 좋은 책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무료해져 자신도 모르게 "아! 심심한데 공부나 해야지"라고 말하는 바람에 주위의 친구들로부터 "혹시 돌지 않았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친한 친구가 묻기를 "나는 너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어떻게 그렇게 공부에만 몰두 할 수 있지?"라고 물었다. 그 아이의 대답은 이랬다. "너는 여러 방면에 능력도 있고 즐기는 것도 많지만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공부밖에 없고 즐기는 것도 공부밖에 없어. 공부가 유일한 나의 취미야. "라 했다. 좀 심하다 할 수 있지만.... 대학을 졸업하면 유학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런 정도면 반정도가 아니라 사 분의 삼이나 죽을 각오를 해야한다는 미국의 유명대학도 그 아이에겐 재미있는 놀이가 되지 않을까?.
두 번째 집중력을 이끄는 것은 절실감(切實感)이다. 절실감 역시 집중력을 부르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하면 큰 이득을 얻는다거나 잘못하면 큰 낭패를 본다는 절실감이 있으면 집중은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우리에게 큰 절실감은 없다. 절실감은 부족함에서 오는 것인데 우리는 그리 부족함 없이 공부하기 때문이다. 온통 흥미를 끄는 것에만 마음이 쏠려있고 미래에 대한 절실감도 미미하다.
어찌 되었든 스스로 절실감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대로 주저앉는다면 미래는 뻔하다. 자기의 주관이 없이 남의 밑에서 남이 시키는 일이나 하고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예의 삶이나 같다. 노예에게 절실감은 없다. 시키는대로 어영부영 일만 하면 밥은 줄 테니까, 그들에게 혹 절실감을 찾는다면 "잘못하면 밥을 못 먹을지도 모른다는 것, 잘못하면 매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같은 동물적 절실감 뿐이다.
자신감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우선 집중력이 확보되면 자신감은 저절로 오게 되어 있다. 집중력과 자신감은 동행한다. 집중력이 있는 사람은 사물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리고 모든 면에 안정적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기성자(紀 者)가 주(周)나라 선왕(宣王)을 위하여 싸움닭을 길렀다.
사흘이 지나자, 왕이 기성자에게 물었다.
"닭이 이젠 싸울 수 있는가?"
"아직 멀었습니다. 공연히 허세만 부리고 사납기만 해서 자기 힘만 믿고 있습니다."
열흘이 지나서 왕이 다시 묻자,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다른 닭의 모습이나 목소리만 들어도 당장 덤벼들려고 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다시 묻자, 기성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은 아닙니다. 상대를 노려보면서 여전히 기운을 돋우고 있습니다."
다시 열흘이 지난 뒤 왕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다. 다른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도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이 마치 나무 닭처럼 보입니다. 그 덕이 온전해진 것이니, 다른 닭들이 감히 덤비지 못하고 도리어 도망칠 것입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 했다. 성공을 심으면 성공을 거두고 실패를 심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성공을 심을 것인가? 내 말을 깊이 새겨듣기 바란다.
성공을 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쉬운 것부터 반복해서 실제의 성공을 거두는 방법이다. 그것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속마음(내부의식)에 성공이 각인된다. 두 번째는 내가 강조하는 명상의 방법이다. 명상은 직접 속마음에 들어가 작용하므로 명상만 제대로 되면 실패를 삭제시키고 그 자리에 성공을 각인시키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속마음은 눈앞에 전개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인지 상상(想像) 속에 일어나는 일인지에 대한 구별능력이 없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그대로 신(神)이란 별명의 잠재의식에 입력시킨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그것이 심안(心眼)을 통해 상상으로 본 것이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력할 수도 있다. 입력이 반복되면 속마음이 입력된 내용대로 틀 잡힌다. 그리고 그것이 발현된다. 그것을 가리켜 현실세계라 한다.
칭찬으로 만든 자신감은 허깨비
사람을 만나면 의도적으로 무조건 칭찬부터 하는 사람들을 본다. 어린이에게 특히 그렇게 하는데 그것이 아이에게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란다. 물론 칭찬이 자신감을 준다는 것을 부정치는 않지만 나는 과도한 칭찬을 반대하는데, 그런 칭찬은 한시적이며 의존적이므로 허깨비 자신감을 부르기 때문이다.
나는 헛 칭찬을 거의 하지 않는데 남의 헛 칭찬을 듣고 헤벌쭉 하는 사람은 아직 유아(幼兒)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도 ㄱ, ㄴ, 정도를 쓰는 나이면 그 칭찬을 나에게 적합한지 입에 바른 헛 칭찬인지는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자신감은 심신이 건강해서 힘(에너지)이 넉넉해야 생겨난다. 그래서 나는 자신감이 필요하면 먼저 몸 수련을 하라고 권한다. 몸이 변하면 마음도 변하기 때문이다.
제자 중에 아주 소극적이고 만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여학생이 있었다. 늘 혼자 있기를 좋아하여 친구도 거의 없었다. 속으로는 남자친구를 원했지만 겉으로는 프로포즈를 하는 남학생을 피할 지경이었다. 그리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고 약간 통통한 몸집이었는데 나는 비만증이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함께 살빼기 작전에 돌입했다.
규칙적인 운동과 함께 물론 마음다스리기가 주 테마였다.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고는 살빼기인들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3개월만에 10Kg을 감량하니 탄력 있는 몸매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큰 성공은 자신감에 있었다. 체중과 반비례로 자신감이 되살아 난 것이다.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다. 만사에 적극적이 되었으며 남자친구도 생겼다. 성적이 덩달아 오르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다.
자신감은 성공체험으로부터
자신감에 제일 큰 힘을 주는 것은 성공체험이다. 확고부동한 자신감은 성공체험으로부터 온다. 이미 성공을 이룬 것에 몸을 사리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당연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공이 반복될수록 자신감은 점점 자란다. 오히려 실패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감에 장애가 되는 것은 실패체험이다. 실패감은 또 실패를 부른다. 실패체험이 머릿속에 남아있으면 성공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그것이 일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또 실패할지도 몰라" 라는 마음은 자신을 위축시킬 뿐이다. 성공하기를 바라면 그 마음을 조절하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는 성공률이 적다. 성공을 위해서는 먼저 내면에 각인된 실패체험을 삭제하고 그곳에 성공체험을 각인시켜야 한다.
출처 : 백학도사의<로또비법신서>
글쓴이 : 백학제자2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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