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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카일라스 코라 (서부티벳 세번째..)

vicsteel 2009. 8. 29. 00:03
How can i go to the kailash

구게에서 돌아와 다르첸으로 가는 차편을 알아보기 위해 다시 백방으로 뛰어 다녀 보지만, 마땅치가 않다.
트럭엔 두명밖에 태울 수 없다며 거부 당하고, 버스는 내일 들어와 모레 나간다고 하고, 다른 여행자들의 차에 끼어 타기에도 세명은 무리이다.
결국 자다에서 다르첸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인 빠얼빈잔까지 랜드크루저를 대여 한다.
자다를 급하게 떠나는게 아쉽긴 했지만, 차편 구하기가 어려우니 움직일 수 있을때 움직이기로 한다.

늦게 출발 한 탓에 비포장의 고원을 빠져 나오니 이미 해가 저물어 버렸다.
중간지점의 천막에서 묵고 가자는 운전사 아저씨를 설득해 나왔는데, 숙소가 없다.
빠얼빈잔이 숙소 이름인줄 알았는데 분기점의 지명이란다.
다르첸 방향으로 한시간여를 더 달려 발견한 차관(차와 간단한 간식거리를 파는 곳)에서 하룻밤 묵고 가기로 한다.


자다에서 나오는 길. 날씨가 좋아 멀리 설산 중 카일라스의 모습도 보인다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다르첸행 차를 히치하기 위해 도로로 나와 앉아 있어 보지만, 여의치가 않다.
아침 공기는 차갑고 몸은 식어 가는데 지나는 차가 없다.
몇시간을 그러고 있었을까. 랜드크루저 한대가 지나길래 손을 흔드는 것으로 모자라 방방 뛰며 차를 세운다.
멈춘 차에는 구게에서 자다까지 우리를 태워 준 중국 여행자들이 타고 있다.
좌석이 모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염치 불구하고 다르첸까지 차를 얻어 탄다.
한번의 검문을 통과한 차는 좌측으론 카일라스를, 우측으론 나니모나니 산을 바라보며 다르첸에 도착한다.

다르첸행 차량을 히치하기 위해 길 위에 나앉다(모델이 되어준 마야양^^)

'묵스디어'라는 고원의 사슴떼를 만나다

카일라스가 모습을 드러내다
    Mt. Kailash Trekking _ the first day
티벳식 연립주택이 늘어선 듯한 무미건조한 다르첸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카일라스로 향한다.
컨디션이 나쁜것도 아니고, 첫번째 묵을 수 있는 곳까지 6시간정도 걸린다고 하니 다르첸에서 일박하지 않고 바로 가기로 한 것이다.

티벳어로 '눈의 보배'란 뜻의 '캉린포체'라 불리는 신산 카일라스는 갠지스, 인더스, 수트레지, 얄룽창포 강의 발원지로 불교와 힌두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카일라스를 한바퀴 돌면 일생 동안의 죄가 씻기고, 10번 돌면 500년 윤회 중에 지은 죄를 면할 수 있고, 100번을 돌면 성불하여 하늘로 오를 수 있다고 하여 많은 순례자들이 코라를 돌기 위해 이 곳을 찾고 있다.
보통 코라를 도는데는 2박 3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나니모나니 산과 귀호가 보인다

두시간을 넘게 걷다 보면 카일라스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딸을 등에 업고 코라를 돌고 있는 티벳여인
다르첸에서 부터 10Km정도는 차량으로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랜드크루저들이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지나는 길을 두시간이나 걷는다는 건 지루하고 짜증나는 일이다.
게다가 이제 시작인데 무릎이 벌써 삐그덕거리는 것도 걱정이다.

얼마를 걸었을까, 카일라스가 얼굴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는 곳에 다다른다.
기도 깃발들이 펼쳐져 있고, 순례자들의 기원이 담긴 돌이 탑처럼 쌓여있는 곳 앞에 서서 여느때 처럼 마음이 평온하게 해 달라고 기원을 드린다.
그 순간. 내 마음이 굉장히 많이 평온해지고 가벼워졌다는 걸 깨달았다.
눈물이 핑돈다. 짧지 않았던 길위에서 많이 비워내고, 많이 수용했나 보다.

다시 길을 나서며 아직 나를 온전히 평온하게 하지 못하는 몇가지의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아니 했다기 보다는 그런 것들이 저절로 찾아 들어왔다.
아직은 어떤게 길인지, 어떤게 최선인지 모르겠다.
내 앞엔 많은 길들이 있다.
어떤 길은 안정적이고 편하지만, 나는 갈 수 없다는 것을, 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 길들은 돌고 돌아 다시 내 발에 닿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두번의 기회를 주지 않고 지나가 버린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다시 그 길을 걷고 싶어도 그럴 수 없도록.
망가진 무릎을 채찍질 하며, 끊임없는 번뇌속을 걷다보니 해질 무렵이 다 되어 디라 북 사원에 도착한다.

카일라스 봉우리가 잘 보이는 곳엔 롱타와 기원이 담긴 돌들이 쌓여있다

갈림길에서 사원과 산위쪽을 고민하다 위로 방향을 잡고 올라오니, 늘 점으로만 존재하는 맙소사군은 보이지 않고 마야만 돌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일단 숙소에 배낭을 내리고 맙소사군을 찾아 사원쪽으로 내려가니, 계곡물이 세차게 흘러내려 건너가기가 쉽지 않다.
몇개의 돌을 건너며 개울을 오르내리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반가운 얼굴이 나타난다.
개울을 건너온 맙소사군과 함께 위쪽 숙소로 올라온다.

어쩌면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른다.
노트래킹의 느림뱅이 여행자의 걸음으로는 산을 날아다니는 맙소사군을 따라 잡을 수가 없다.
게다가 셋이라 차를 잡기도 힘이 드니, 만약 거리가 벌어지게 되면 서로 기다리지 않고 헤어져 라싸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당연히 그러는 것이 맞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막상 헤어질 생각을 하니 섭섭하다.


오체투지를 하며 코라를 도는 티벳탄
    Mt. Kailash Trekking _ the second day
5200m라 추위를 걱정해 옷이란 옷은 다 껴입었더니 숨이 막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이불하나를 걷어 내고 옷을 한겹 벗어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여명에 빛나는 카일라스를 보며 길을 나선다.
오늘은 5630M의 될마라(쪼우마라) 고개를 4시간여 올라야 한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숨이 깔딱깔딱 넘어간다고 하여 일명 깔딱고개라 불리는 곳이다.
숨이 턱까지 차 거칠게 토해내지만, 다리는 어제보다 훨씬 가볍고 달리 고산증세랄만한 것도 보이지도 않는다.

길을 오르며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의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본다.
내 가족들, 친구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이들의 죄를 없애달라고 빌진 않았다.
지금까지 지은 죄값은 언젠가 갚아야 하는 것이니, 지금부터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해달라고, 늘 행복하게 해달라고 한명 한명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원을 드린다.

산에는 죽은 이들의 옷가지들이 여기저기 쌓여있다. 오지 못한 이들을 위해 가족들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 중 색실이 쌓여 있는 곳에 팔찌를 하나 끊어 올려 놓는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될마라 고개 정상이다.

여명을 받고 빛나고 있는 카일라스 - 디라 북 사원 앞에서

산 여기저기엔 카일라스에 오지 못하고 죽은 이들의 옷가지들이 놓여있다

될마라 고개를 넘는 건 야크에게도 힘에 부치는 일이다
이제 부터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이상할 정도로 쉬웠던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힘에 부친다.
어느 시점 부터는 카일라스도 보이질 않는다.
돌이 많아 미끄러지기도 하고, 개울을 미리 건너지 못해 야크떼 속을 이리저리 떠돌며 고생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9시간이 덜 걸려 목적지인 주르뚝 곰파에 도착한다.
맙소사군은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다르첸까지 간 것 같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고, 날도 여전히 밝아 다르첸까지 갈까 잠시 생각해 보지만, 그만둔다.
세시간이 악몽이 될지도 모를 모험을 감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오신 비구니스님 세분과 한 방을 쓴다.
덕분에 햇반에 김이며 고추장으로 든든한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
어제보다 덜 입고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밤에 한꺼플을 더 벗어내는 난리법석을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자다에서 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목도 여전히 뻣뻣하다.

될마라 고개를 넘자마자 만나게 되는 자비호수

이제 부터는 계속 내리막이 이어진다
    Mt. Kailash Trekking _ the third day
아침도 스님들에게 햇반공양을 받고 느긋하게 출발한다.
세시간만 걸으면 되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
오늘은 카일라스가 내내 보이지 않는 길이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아닌 오솔길을 걷는데도 어제 보다 더 힘이 든다. 그래도 속도는 제법 빠른 편이다.
두시간을 못가자 랜드크루저들이 모여 있는 곳이 나타난다.
이 곳에서 스님들 일행을 만나 차를 얻어 타고 다르첸으로 들어온다.

운이 좋은 여행자다.
그리 쉬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다는 카일라스의 화사한 얼굴을 내내 보았고, 숨이 깔딱 넘어 간다는 될마라 고개도 어렵지 않게 넘었지 않나, 맘 좋은 스님들을 만나 몇일 굶주린 배도 채우고, 마음도 채운다.


죄가 씻기지 않는다 해도 나는 이 코라가 꽤 만족스럽다.
내 마음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원드릴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나는 기분이 좋다. 행복한게다.

평탄한 마지막 길이 다르첸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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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서부티벳여행기는 홈피에서 ^_^

출처 : ONE WORLD TRAVEL MAKER 5불생활자
글쓴이 : freyj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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