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운명 ....봄날은 간다
내가 1학년 때 데모가 증에 이런 노래가 있었다. 사실 이 노래는 데모를 할 때 보다 술을 마실 때 더 자주 부르는 권주가였는데 다름아닌 술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술 마시고 한 번쯤은 목숨을 내 걸고 마셔 보아라!' 하는 무시무시한 대목이였는데 이는 다운된 술자리의 분위기를 한 번에 업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가끔 여기서 더 업 되면 누구는
'사람들은 날 보고 인생 조졌다 한다. 사람들은 날 보고 인생조졌다 한다. 사람들아! 사람들아! 난 인생 조진 것 없네!...' 를 불러 이천원 짜리 오뎅안주에 소주를 까는 술자리의 분위기를 막장 끝까지 밀어붙이는 선배도 있었지만 여하튼 그 노래는 고만고만한 술자리를 잠시나마 의미심장하게 바꿔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이루어냈다.
또 그 노래에는 막 스무살이 된 새내기의 가슴을 울렁울렁하게하는 대목도 있었는데 그것은
'사랑을 할려거든 목숨 바쳐라! 사랑은 그럴 때 아름다워라!'
라는 부분이다. 이쯤되면 선배 혼자 부르기 시작한 노래에 새내기들조차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따라 부르게 되는데 이는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을 찡그리게 하는 주사가 되지만 그것은 힘이였고 우리는 그 때 그 힘에 매료될 수 밖에 없는 나이였다.
무슨 말을 할려고 이렇게 뜸을 들였냐 하면 영화<너는 내 운명>은 사랑을 할려거든 목숨바쳐라! 라고 말하는 영화고 <봄날은 간다>는 바치지 말라는 영화다.
나는 영화<봄날은 간다>를 몇 일전에야 보고 말았다. 뭐 제목에서 풍기는 그냥 그렇고 그런 로맨스려니 하고 밀어두었다가, 웬지 '간다'에 조금은 수상쩍은 냄새가 나서 집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너는 내 운명>에 간텍스트로 잠깐 나오게 되는데 그 때부터 두 영화가 겹쳐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영화<봄날은 간다>는 쿨한 여자와 좀 덜 쿨한 남자의 사랑이야기이다. 쿨한 여자는 사랑은 변하는 것이라 했고 좀 덜 쿨한 남자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 하고 강변해 보지만 결국 떠나간 쿨한 여자의 새로 산 최고급 스포츠세단 마티즈의 겨드랑이를 부욱 하고 긁는 아주 안 쿨한 방법까지 쓰게 된다.
결국, 그 덜 쿨한 남자는 평소엔 정신나간 할머니가 자기 손자의 딱한 사정을 알고 갑자기 정신이 돌아와 전광석화와도 같은 경구를 한 마디 들려준다.
'여자와 떠난 버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 라는 한 마디에 깨달음을 얻어 마지막 장면에서는 쿨한 여자가 '우리 다시 만날까?'라는 쿨 한 프로포즈를 쏘~ 쿨하게 거절하고 억새풀 숲에 홀로 서 바람소리를 듣는다. 사랑은 잠시 스쳐가는 바람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너는 내 운명이>이 관념적 허구라면 <봄날은 간다>는 이성적 현실이며 <너는 내 운명>이 판타지라면 <봄날은 간다>는 리얼니즘이다.
그런데 나는 왜<너는 내 운명>을 보면서 쪽팔리게도 닭똥같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말았는가?
확실히 영화는 판타지가 더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