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나는 끈 없는 (무현) 자의 지지자로 끝까지 남겠다.
vicsteel
2007. 9. 2. 21:17
나는 노빠일까? 노빠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뭐라 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20%의 대통령 지지자 중 한 명으로 남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하겠다. 나는 ‘노사모’에 가입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열린 우리당 당원도 아니다. 대통령을 위해 거리로 나서 촛불 집회 같은 것을 해 본 적도 없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 의결을 당했을 때도, 그저 방바닥을 치며 한탄을 한 것 밖에는 없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나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으며, 대통령과 집권당이 나에게 무언가를 해준 것은 더더욱 없다. 앞으로 살 집을 마련해야 할 나로서는, 지금의 부동산 가격 폭등에 가장 분노하고 대통령에게 삿대 짓을 해야 할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노무현 식 화법에 대해서도 그리 달갑게 여기지는 않는다. 대통령은 많은 부분에서 실정을 했고, 또 유연함과 강직함을 균형 있게 보여주는 데에도 실패했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조금씩은 나름대로 훌륭한 치적을 쌓았고, 또 한 편으로 실정을 하기도 하였다. 김영삼 이전의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논쟁들은 그들의 치적이 아니라 아마도 대부분이 ‘정당성’과 ‘정통성’, 그리고 ‘독재’에 관해서 일 것이다. 이승만도, 박정희도, 전두환도, 노태우도 나름대로 많은 치적을 쌓았다. 하지만 그들이 비판 받는 이유는 권력을 잡고, 유지하며, 물러나는 데 있어 정당성과 정통성을 획득하지 못하였다는 것이고, 이러한 태생적인 결함을 덮기 위해 그들이 독재자적 성향을 보이거나 독재 권력과 결탁하였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까지 우리 민주주의의 위기와 갈등은 ‘대통령제’와 ‘국민주권’ 사이의 위기이자 갈등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부터 불거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의회 민주주의’와 ‘인민주권’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의회의 역량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말이다. 독재자적 통치권자가 입법과 사법을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마감되면서, 입법부의 역할과 위상이 높아졌지만, 우리의 의회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그런 입법부가 되지 못하였다. 오직 자신들의 이익과 정권 창출에만 목을 매는 이익집단과 같은 정당만 있었을 뿐이었다. 국민들 역시 자신의 손으로 자유롭게 국가원수와 국회의원을 뽑을 수 있는 ‘실질적인 주권’의 시대를 맞이하였지만, 스스로 제대로 된 국회의원을 뽑아야 할 의무를 방기하고 지역주의와 무관심, 아집으로 선거를 맞이하였다. 그러다보니 의회와 여당이 대통령과 국민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통령이 의회와 국민 사이에 끼어 고통을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더 이상 대통령의 정당성이나 정통성을 가지고 시비를 할 수가 없게 되자, 대통령이 맘에 들지 않는 세력들은 대통령의 치적을 가로 막고 명성을 폄훼하는 일에 집중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대통령을 깎아 내리고 잡아당기는 일이 바로 우리 자신을 깎아 내리고 잡아 당겨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는 일임을 많은 국민들은 깨닫지 못한다. 내가 성인이 되면서 처음으로 마주한 통치자 김영삼은 그리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가 대통령이 된 과정이나 통치 스타일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이 때문이긴 했지만 어쨌든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김영삼 대통령이 잘 되길 바랐지 잘못 되길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잘못된다는 것은 나라가 잘못된다는 것이고, 국민이 고통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대다수 국민들이 그를 믿고 지지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이할 때까지 마땅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대통령 김영삼을 지지하지 않은 65%의 국민들은 그를 지지한 35% 국민들 때문에 나라가 이렇게 되었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모두가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금모으기 운동에 나섰다. 오히려 김영삼 정권에 빌붙어 죄악을 남발한 자들만은 숨거나 감추기에 바빴다. 그런 자들이 오히려 세월이 좋아지자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양 뻔뻔하게 말을 쏟아내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정말 슬프다. 칭찬이나 격려보다는 끊임없는 공격과 모함에 시달려야 하니 말이다. 물론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잘 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대통령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보수를 가장한 기득권 세력의 진정한 본심은 무엇일까? ‘배경도 없는 자가 자수성가해서 성공하는 꼴은 보기 싫다’는 것이다. ‘판사까지 되어서 사회 지도층이 된 자가 오히려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편을 드는 꼴은 더더욱 보기 싫다’는 것이며, ‘한 번 잡은 힘과 권력을 죽는 순간까지 절대 놓고 싶지 않으며, 내 자손 역시 능력에 관계없이 그것을 움켜쥐고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배경과 연줄, 금권에 의해서 성공하는 사회가 능력과 노력에 의해서 성공하는 사회로 바뀌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역사 시대 2천년에 있어 최초의 평민 출신 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개혁과 진보, 투명성, 자수성가, 정당한 노력과 공정한 경쟁’을 표방하는 자가 갑작스레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고 불순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거기다 그러한 자가 대통령이 되어서 자신의 신념과 약속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너무나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김대중은 미웠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주고 확대시켜준 김대중은 밉지 않았던 수구 기득권이었다. 그러나 개인으로서도 맘에 들지 않는 대통령이 자신들의 이익도 보호해주지 않을 기세를 보이자, 그들은 이전보다 더 강력하고 조직적인 저항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말이 너무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물론 적절하지 않은 말, 감정적인 언어, 근거 없는 주장이라면 대통령이 해야 할 말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언어’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문제 해결이란 것이 있는가? 말로 설득할 수 없고 말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위험한 사회이다. 이전의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은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었다. 주변에서 지도자의 기색을 살펴 알아서 처리했고 말이 아니라 겁을 주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자는 근엄한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정치적 의사소통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정치적 의사소통 역시 대화와 설득을 통해 이루어질 때 가장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다. 대통령이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경우라면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경우이다. 대통령이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없거나, 무능력을 드러낼까봐 두려운 것이거나, 아랫사람에게 자기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거나, 밀실에서 뭔가 정치적 계략을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선비다운’ 지도자이다. 선비는 결코 근엄함과 권위만을 내세우지 않는다. 따뜻한 웃음으로 백성에게 다가가는 자가 선비이다. 체면을 알고 부끄러운 것을 알기에 작은 일에 대해서는 삼가는 것뿐이다. 정작 필요한 시점에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세상에 목소리를 내며 직접 행동에 나서는 자가 선비이다. 그저 뒷짐을 쥐고 서서 헛기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설득을 하는 것이 선비인 것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다른 사람들에게 국민을 설득할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스스로 그 책임을 떠맡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칭찬을 받을지 비난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 위험부담을 스스로 떠안은 것이다. 사물과 사건의 외향 속에는 항상 숨겨진 본질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외향에 쉽게 현혹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공격하는 수많은 비난과 폄하의 본질적인 의도를 알지 못한 채, 이러한 외향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정말 큰 재앙이다.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에 무심하다’, ‘대통령이 입이 너무 가볍다’, ‘대통령이 미국과 적이 되려한다’, ‘대통령이 친북세력을 옹호 한다’는 등의 무차별적 공세 속에, 많은 이들이 대통령 노무현을 선택한 본질을 잊어버리고 세세한 시비에 휘말려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있다. 우리가 ‘수구, 극우’라고 부르는 몇몇 사람의 비이성적인 선동으로 나라가 혼란한 사이, 그 뒤에 숨어 혼란을 즐기며 만족한 웃음을 흘리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아무리 심지가 곧더라도, 주변에서 상대방을 끊임없이 모략하면 그 중상을 믿게 되려는 심리를 갖고 있다. 대통령 노무현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자들은 그러한 인간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국민들이 지도자에 대한 신뢰에 의문을 갖게 되고 혼란이 가중 되는 사이에 정치, 경제, 사회 개혁의 핵심은 잊혀지고, 수구 기득권의 의도대로 우리 사회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국민의 정치의식과 의회의 수준에서는, 그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잘 해낼 수가 없음을 나는 안다. 국민도 의회도 그저 희생양을 찾고 있을 뿐이다. 국회도 국민도 제대로 된 정치를 구현해 낼 능력이나 자세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보수 세력과 지배층은 나라가 쇠잔해 가는데도 오직 자신들의 아집과 이익만을 위해 국가의 미래를 희생시키는 것을 감수하려고 한다. 무늬만 진보인 사람들 역시 오직 자신의 이익과 미래를 보장해 주는 변화만을 고집하고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들은 자신의 무책임과 무관심을 중도라는 이름딱지로 위장하고 있다. 만일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해낼 수 있었던 것을 이회창 후보는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아마 지금쯤 국민들은 대통령이 왜 만날 뒷짐만 지고 있느냐고 불만스러워 했을 것이다. 나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경제 성장에 여러 장애가 발생할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권위주의의 청산, 직접민주주의의 발전, 묻힌 담론의 표출, 과거 청산, 분배 정의의 실현, 지역주의의 극복, 남북 관계 개선, 국토 집중화 개선 등의 문제가 더 중요했다. 세상일은 항상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음을 어리석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다 원만히, 잘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잘못이다. 우리 자신이 왜 대통령 노무현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잊고 있다. 우리가 그를 통해 얻은 것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준 것은 준 것이고 안 준 것도 있으니 잘못했다고 손가락질 하는 후안무치한 우리의 모습이 나는 너무나 부끄럽고 싫다. 게다가 기실 대통령이 우리에게 해주지 못한 많은 것들이 사실은 우리 자신의 게으름, 이기심, 무관심, 무능력, 이간질 때문임을 알기에 나는 더더욱 우리가 부끄럽다. 남들이 다 대통령을 욕하니까 나도 덩달아 욕이나 실컷 하자는 추잡하고 기회주의적인 국민들의 모습에서 나는 절망을 느낀다.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부끄러워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는 어느 네티즌의 말에서 나는 한 없이 무책임하고 부화뇌동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발견한다. 자신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니 함께 책임을 느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마지막 남은 기간 동안 실정을 만회하고 더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돕는 것이 국민의 도리이다. 대통령이 실패하면 우리 국가와 국민도 실패하는 것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잘 하고 훌륭해서 여전히 40%의 국민이 그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 역시 노무현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퇴임하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나는 그가 임기를 마칠 때까지 차라리 노빠로 남아 대통령의 정책 수행을 지지하겠다. |
출처 : 나는 끈 없는 (무현) 자의 지지자로 끝까지 남겠다.
글쓴이 : 누구세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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