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노동자서민의 눈으로 본 의사파업
의사파업의 핵심 요구 사항은 '의료민영화 반대'인가 '수가인상'인가? 혹은 '관치의료 철폐'인가?
의사선생님들께서 의료민영화를 반대한다는 것은 나같은 서민의 입장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인데,
그 외의 요구 사항들로 넘어가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들이 존재한다.
환자들과 노동자.서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의사들이 의료비 폭등과 과잉진료를 유발할 의료 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히 박수를 받아야 할 일인데, 의사협회의 대정부 요구 중 일부는 오히려 노동자서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내용들이 있다는 말이다. 즉 의협이 요구하고 있는 '의료민영화 반대' '의료수가 정상화'
'관치의료 폐지' 주장들은 그 자체로 이해가 상충하며 상호 모순적이라는 것인데...
의협에 의해 '관치의료 철폐'라는 이름으로 압축되어 요구되고 있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보건소가
환자를 진료하지 말라는 요구라든지, 의사의 진료나 약 처방 등에 정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와 개입하지
말라거나, 결정적으로 의료보험료를 인상해서 의료 수가를 정상화 하라는 요구 등이다.
예컨대 보건소가 제공하는 의료의 질이 낮음을 지적하면서 환자를 진료하지 말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적은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그나마의 공공병원들들의 역할을 축소하라는 말이나 같다. 보건소가 제공하는
의료의 질이 낮으면, 높일것을 요구하고 투쟁해야 하는 것이지, 보건소에서 진료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은
전혀 이치에도 맞지 않고 납득할 수도 없다.
의사가 진료나 처방을 내리는데 있어서 정부가 개입하지 말라는 요구에 있어서도, 의사들의 전문적인 영역을
침범하는 문제로서의 '관치의료'라면 당연히 제고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의협이 요구하는 '관치의료 폐지'
에는 이른바 의료 시장의 자율에 맡기고 의료 전반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축소.폐지하라는, 즉 의료 공공성의
약화.축소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의협은 2000년대에만 두 차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위한 위헌 소송을 제기했고, '관치의료 타파'를 외치는 등 정부의 규제 완화를 강력히 요구해 오지 않았던가.
이쯤에서 의협이 요구하는 '관치의료 타파'가 어떻게 뭉뚱그려진 동상이몽인지 알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의료수가 인상을 의료보험료 인상을 통해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부분에서 더욱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의사들의 주장처럼 의료 수가가 터무니 없이 낮아서 고소득층은 커녕 서민적인 삶도 영위할
수 없는 처지이며, 이 때문에 의료의 질이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분명 개선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왜 그 대안이 '서민들 주머니 털어서 의료수가 올리기'인 의료보험료 인상으로 압축되는 것인가?
의협에서는 자신들의 의료수가 인상안이 정당함을 말하기 위해서, 한국이 얼마나 의료비 부담률이 낮은
국가인가에 대해서 선전하기도 한다. 예컨대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률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 또한 궁색한 조삼모사식 억지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미 진작 논의가 진행되었다.
더우기 이미 대한민국 서민들은 너무 낮은 소득에 턱없이 비싼 물가와 높은 세금들 때문에 의료보험료를 인상
한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재앙이다. 대체 왜 의협은 정부가 공공의료 재정을 더 많이 책정하고 부담하라고
요구하며 싸우지 않고, 서민들에게 재앙이 될 의료보험료 인상을 통해서 의료 수가를 인상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인가? 결국 의료민영화가 의료비 폭등과 과잉진료를 불러 올 것이라며 반대한다지만, '관치의료 폐지'에
담겨 있는 모호한 공공의료 축소 요구와, '의료보험료 인상을 통한 의료 수가 정상화' 요구에서 볼 때 공공의료
비중이 극도로 낮고 정부의 규제가 취약한 상황에서 그 부담을 노동자 서민들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
라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의사협회는 그동안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등 사실상의 의료 민영화를 요구해 오지 않았던가?
이 시점에서 "의료민영화 맞을래 세금 조금 더 부담하고 의료 혜택 받을래?" 라는 식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노동자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둘다 싫다. 쉽게 말해서 서민 부담 늘이지 말고 정부의
공공 의료 재정을 늘여서 해결하라고 싸우는 것이 맞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4대강에 퍼부을 돈을 의료
재정 늘이는데 쓰고, 그것으로 의료 수가를 인상하라고 요구하고 싸웠어야 했단 말이다.
이렇듯이 그간 의협이 보여왔던 매우 이중적인 태도들과 스스로 모순적인 요구 사항들 때문에, "적의 적"
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지지를 보내기가 망설여진다는 말이다.
사실 이런 모순은 현재 의사협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해관계와 계급적 다양성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말이냐면, 의사들 중 일부는 노동계급에 속하지만 일부는 중간계급에 속하고 소수는 자본가 계급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의료 민영화에 반대하는 요구와 정부 규제에 반대하고 의료 민영화를 지지하는 요구들이
공존하며, 스스로의 요구들이 모순적으로 상충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런 구성의 의사집단은 '의료민영화' 반대를 일관되게 요구하며 투쟁의 주체가 되기 힘들다.
민간의료기관이 대부분인 한국의 의사들은 자영업자와 비슷한 처지여서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을 확대하는
정책에 일관되게 반대하지 못한다. 이런 조처들 중 일부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한다고 느껴 반발할 수도
있지만 파이 자체가 커지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각자 머릿속에서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동상이몽의 이해관계가 현재 의협의 모순된 요구들 속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사실 의사협회가 의료 민영화에 반대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심의 눈길을 보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의협은 지난 2월 18일에도 '의료발전협의회 협의결과'(이하 협의결과)를 발표해 박근혜 정부의
의료 민영화 정책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지 않았던가? 의료발전협의회 협의결과를 보면, 의사협회는 영리자
회사 허용 정책을 그대로 수용했고, 원격의료에 대해서도 정부 입장을 그대로 수용했고 말이다.
그것도 모자라 "최근 불거진 일부 왜곡된 의료 민영화 논란에 대해서는 공동의 우려를 표명"한다며 정부
편을 들어 의료 민영화 반대 투쟁에 재를 뿌렸다. 더 나아가 "현행 수가체계의 불균형 해소", "보상체계 개선",
"추가적 재원 지원" 등 수가 인상을 암시해, 의사협회가 사실상 수가 인상을 대가로 의료민영화에 찬성해준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았고 말이다.
의협의 의료민영화 반대 투쟁을 지지한다.
하지만 그것이 노동자 서민 대중들의 부담을 높여서 의료 수가를 인상해달라는 요구를 감추기 위한 꼼수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더 큰 대중적 분노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 한가지 영리 자회사 추진, 부대사업 확대, 원격의료, 인수합병 허용 등 박근혜 정부의 의료 민영화에 맞서기
위해 2백50여 개의 단체가 모여 공동 투쟁을 결의했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등으로 구성된 '의료민영화.
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는 3월 11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1백만 서명운동, 범국민대회 등 이후 투쟁 계획을 밝혔다. 특히 보건의료노조는 파업을 예고하며 의료
민영화에 맞선 강력한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의사협의회는 이들과 끝까지 연대해서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에 동참할 수 있는가?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