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완구의 자기 고백, 새누리당의 인지부조화와 가해자의 정체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는 1950년대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제시한 개념인데, 자신의 태도나 행동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이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불일치를 제거함으로써 불편한 마음을 없애려 하는 심리상태를 의미한다. 워
낙 많이 인용 · 활용된 심리학 개념이기 때문에 그리 낯설진 않을 것이다. 인지부조화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흔히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포도 이야기를 예로 들곤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포도를 먹을 수 없었던 여우는 '저 포도는 무지 신 거라서 맛이 없을
거야'라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스스로 위안을 얻는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새누리당의 태도에서 이러한 인지부조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 워낙 많은 왜곡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깔끔한 정리가 필요한데, 세월호 유가족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조사진상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 외에 보상 문제라든지 특례 입학 등은 세월호 유가족이 요구한 바 없는 사안들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오직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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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상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대한변협과 유가족이 제안한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새누리당은 '사법체계를
흔드는 것'이라면서 완강하게 반대 입장을 취해왔다. 지난 2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인터뷰 내용은 새누리당의 기존 입장을 명확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인지부조화'에 빠져 있는 새누리당의 한심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완구 : 우리 사회에 법과 원칙과 근간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가 어떤 사건이든지 가해자를 조사하고 수사한다는 것은 문명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누구나가 모두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사는 건데요. 피해자가 그때마다 가해자를 조사하고 수사한다면 우리 사회가 유지가 되겠습니까?
김 현정 : 여기서는 잠깐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게요. 그런데 피해자가 직접 수사를 하러 다니겠다는 게 아니고, 그 수사를 정말 잘할 것 같은 사람을 뽑겠다는 건데요. 그러면 피해자가 뽑는 그 사람에게 수사를 잘하도록 해 주는 게 어떻게 보면 상식적으로 더 좋은 사람을 뽑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완구 : 그런데요. 지금 그런 논리를 다시 연장시켜 보면 피해자가 됐든, 피해자의 대리인이 됐든 기본적으로는 피해자 의견이 반영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희가 법정에서 다툼을 할 때 본인 또는 본인의 변호인이 대리하지 않습니까?
(…)
김현정 : 변호인이라기보다는 지금 이건 특별검사를 추천하는 과정인데요.
이완구 : 그러니까 변호인이 됐든, 대리인이 됐든 피해자가 추천하는 사람이 조사한다면 받으시겠냐고요.
김현정> 그러니까, 말하자면 가해자 입장에서는 대리인처럼 느껴질 거고, 피해자가 직접 수사하는 것처럼 느낄 수밖엔 없는 것이다, 그것을 막아주겠다, 이런 말씀이세요.
이 완구 :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피해자가 됐든, 피해자의 대리인이 됐든, 피해자의 변호인이 됐든 가해자를 조사한다면 받으시겠냐고요. 그리고 수사까지 한다면 받으시겠습니까? 교통사고가 났는데요. 그건 이 사회의 기본적인 원칙 아닙니까?
김현정 : 그것을 기본원칙이라고 생각하신다...
이완구 : 어렵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우리 모두 저를 포함해서 가해자가 될 수 있는데요. 피해자 직접 또는 피해자의 변호인, 대리인이 저를 조사하고 수사까지 한다면 받겠냐고요.
이완구 원내대표는 조사진상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수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법과 원칙과 근간을 흔드는 일' 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문명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나? 이는 다시 말해서 지금 새누리당은 대한민국의 법과 원칙과 근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뭔가 대단한 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자신들의 싸움에 정당성과 권위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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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 새누리당의 프레임은 간단하다. 세월호 유족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법과 원칙과 근간을 흔드는' 땡깡에 불과하고, 이를 막는
새누리당은 대한민국 사회를 수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입장을 지지하고 세월호 유족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도 역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착시 현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새누리당이 만들어낸 프레임에 불과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굉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미 여론의 왜곡 현상은 심각할 정도다.
앞선 글에서 설명했듯이,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사법 체계를 뒤흔드는 일이 결코 아니다. 지난 7월 24일, 위철한 대한변호사협회장을 비롯한 전국의 변호사 1043명이 "4ㆍ16 특별법에 따라 구성되는 특별위원회는 민간기구가 아니라 법에 의해 설치되는 공적기구(국가위원회 성격)이며, 특별사법경찰관리의 수사권을 조사관에게 부여하는 것은 이미 50개 이상의 공적기관이 행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새누리당의 주장을 공박한 바 있다.
뒤이어 7월 28일에는 법학자들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위해 민간위원이나 조사관에 필요 범위 안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법 체계상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면서 새누리당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앞뒤 다 잘라버리고, '피해자가 가해자를 수사한다'고만 주장하고 있다. 더
이상 새누리당은 '고민'할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정말 피해자가 가해자를 수사하는 것인지에 대해 따져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전국의 변호사와 법학자들의 반박에 대해 숙고할 의사가 없는 것이다.
이 것이 바로 '인지부조화'의 위력이다. 새누리당에게 남은 것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수사하는 것은 법과 원칙을 흔드는 것이다'는 껩데기만 남은 주장뿐이다. 반복적으로 이 명제를 외치면서 자신들의 왜곡과 불합리를 덮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법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자위(自慰)'하면 그만이다. 지금 그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지적할 부분이 있다. 인터뷰 내용에서도 잘 나타나지만, 김현정 앵커의 질문에 대해 이완구 원내대표는 '가해자'의 입장에 빙의된 듯한 발언을 계속했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과도하게 감정이입을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과연 이 원내대표가 말하고 있는 '가해자'에 포함되는 대상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이 원내대표는 짐짓 중립적인 입장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그는 가해자를 비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고 조사진상위가 꾸려지면 청해진 해운을 비롯해서 해경과 검찰, 더 나아가 국회와 정부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도 조사 대상이 아니던가?
세월호 유족들이 목숨을 건 단식까지 하면서 조사진상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은 바로 '가해자'에 대통령뿐만 아니라 검찰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최고권력마저도 조사 대상에 포함되어 있는 마당에 수사권마저 보장 되지 않는다면 진상 조사는 요식 행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특검도
마찬가지다. 특검추천권이 누구에게 있든 간에 결국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는 구조 하에서 특검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품은 것은 당연하다. 설령 특검이 임명된다고 하더라도 특검 수사팀을 꾸리는 과정에서 현재 검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진상 조사를 비롯한 수사가 독립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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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당이 조사진상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에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진짜 이유가 그 조사 대상에 청와대과 국회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성립조차 되지 않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수사하면 안
된다'는 발언을 통해 '가해자'라는 존재를 인정해버렸다. 그가 그런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가해자가 가해자를 수사하는 것은 사회의 법과 원칙과 근간을 해치는 일이 아닌가?'
세 월호 특별법의 진실을 파악하는 것은 까다롭고 복잡한 일이다. 또, 계속된 언론 보도에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완구 원내대표의 말처럼 우리는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우리가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우리도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300여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무책임하고 무능한 대응 때문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 죽음의 진상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다면 이러한 죽음은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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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호 참사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근간을 지킨다'는 인지부조화에 빠진 채 실제로는 진실을 은페하고
왜곡하고 있는 새누리당을 냉엄하게 꾸짖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세월호 유족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