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꼭 60년이 되는 해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특별히 ‘지난 10년’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것은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다른 50년과는 맥이 통한다는 뜻이 될 수 있는데, 그럴 경우 지난 10년과 나머지 50년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마도 전자는 진보 또는 좌파 성향의 정권이 통치한 기간이고 후자는 그와 대립되는 보수 또는 우파 성향의 정권에서 통치한 기간이라는 표명이 함축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 보수 또는 우파 정권임을 선언하며 이념적 입장을 분명히 하는 셈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과거 정부들을 상대화하여 스스로 이념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가 다른 한편으로는 “이념과 논리를 벗어나 ‘실용’을 추구한다.”고 선언하는 점이다. 사실 2007년 대통령 선거 운동에서 시작하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 기간을 거쳐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정을 펼치는 동안 수사학적으로는 ‘실용주의’를 가장 표면에 내세우며 강조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볼 때 이명박 정부의 정치 담론에는 상호 모순되는 메시지들이 혼재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국정 철학의 모순이나 혼선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철학, 담론, 현실
철학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듯이 어떤 주체의 철학을 몇 마디 말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 개인의 철학도 그렇거니와 한 정부의 철학은 더욱 그렇다. 특히, 정책적 정당구도가 뚜렷하지 못한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탄생하는 정부들의 철학을 규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선거 때마다 대통령 후보자들은 철학적 입장에 충실하기보다 최대한 많은 유권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다다익선으로 수용하여 공약내용에 포함시키려 애쓰기 때문에 적든 많든 선거 공약을 존중하며 반영해야 하는 정책에서 일관성 있는 철학을 말하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 운영자들은 자신의 철학을 내세워 국민의 신뢰를 얻고자 노력하고, 국민의 입장에서도 국정 책임자들에게 철학을 기대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도 국정 철학에 관한 담론을 구성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는 것 같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국정철학 TF팀’을 운영하면서 그 논리와 수사학을 가다듬었고, 대통령 취임 뒤 몇 차례 검토와 손질을 거쳐 도식적 체계를 갖추었다. 그 내용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공표되고 있는데,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명시적으로 ‘국정 철학’이라는 제목의 페이지를 만들어 홍보하고 있다. 그것을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명박 정부 국정철학의 개념 체계 | |||||
발전, 통합 (시대 정신) |
* 역사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발전의 역사’로 인식 건국→산업화→민주화를 승화시킨 새로운 발전 모델 요구 * 세계사적 변화: 세계화, 지식정보화, 지구온난화 등 지구적 문제의 부각, 국제관계의 다원화, 인간중심의 보편적 가치 확산 등 문명사적 전환기의 복합적 도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자세 요구 * 국민적 요구: 경제 살리기와 국민통합에 대한 요구 新성장동력 발굴, 민생경제 회복, 지역적 이념적 분열의 극복 | ||||
선진화 (국가 비전) |
선진화를 통한 세계일류국가 시대정신에 부응하기 위해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장기적 국가비전 경제의 선진화, 삶의 질의 선진화, 국제규범의 능동적 수용과 창출 등을 통해 세계에서 인정받는 고품격 국가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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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 (행동 규범) |
국가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규범: 創造的 實用主義 (Creative Pragmatism) 실질적인 성과 중시, 현실적인 적합성, 새로운 목표와 방법의 창안, 체계적인 문제 인식과 해결 | ||||
신(新)발전 (국정목표) |
국가비전 실현 위해 이명박 정부가 실현할 국정목표: 신 발전 체제 구축 * 산업화시대 발전 체제를 승화시킨 새로운 발전체제를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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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지표 |
* 신 발전 체제 구축을 위한 부문별 준거 01. 섬기는 정부 - 정부조직 개편, 공기업 민영화 · 효율화, 행정규제 개혁 - 엄격한 법질서 확립 02. 활기찬 시장경제 - FTA의 적극적 추진과 투자 유치, 과감한 규제개혁과 기술혁신 촉진 - 개발과 환경의 조화, 시장성과 공공성의 조화 03. 능동적 복지 - 생산적 복지와 맞춤형 복지, 빈곤의 대물림 차단, 일·여가·교육을 3대 엔진으로 하는 복지, - 고령화 사회 대응 - 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사회적 자본 함양 04. 인재 대국 - 교육개혁, 대학경쟁력 강화, 평생직업능력 개발 - 과학기술 투자, 우수 과학 인재 유치 05. 성숙한 세계국가 - 비핵 · 개방 · 3000구상, 21세기 창조적 한미동맹 - 新아시아 비전 외교, 한반도 경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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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시된 내용을 살펴보면 모든 정권과 정부가 그렇듯이 이명박 정부도 철학의 체계에 앞서 유권자, 대중 또는 국민이 호감을 가질만한 좋은 개념들을 일단 많이 동원하여 선언적 메시지들을 나열하면서 서로 조합 가능한 방식으로 ‘국정 철학’의 담론을 구성해 보려고 애쓴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메시지에 담긴 대부분의 개념들은 오늘날 대중사회가 이미 일상적으로 대면하고 있는 인식태(épistémè)의 요소들이어서 특정 주체의 철학을 구성하는 변별소로 보기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을 그냥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논리적 체계를 갖추려고 노력은 많이 했다는 점이다.
일상적이고 진부한 것이라도 그것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체계로 재구성하여 의식화하면 ‘철학’이 될 수 있고, 그것을 국정 운영에 일관성 있게 적용한다면 ‘국정 철학’이 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이명박 정부가 제시하는 ‘국정 철학’의 담론에는 실제로 어떤 철학이 들어있는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시대적 인식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한국사회의 역사적 흐름을 ‘건국→산업화→민주화→’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로 본 것이다. 여기에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시대적 사명을 다하여 일단락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들어선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사실 한국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일정한 단계를 밟았다는 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동의해 왔고, 현시점을 그 이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상당히 확산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시대 인식은 일단 우리 사회의 일반적 정서를 예민하게 읽어서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관하여 엄밀히 분석하며 토론을 벌이자면, 한국사회에서 산업화와 민주화 등이 패러다임의 교체로 볼만큼 ‘인식론적 단절’을 실제로 이루어 왔는가 아니면 동시에 또는 중첩하여 혼합적으로 진화하고 있는가, 그리고 현시점은 진정으로 민주화가 일단락된 상태인가 아니면 오히려 질적 민주화를 다시 시작하여 완성해야 할 때인가 등의 문제들이 진지하게 제기되는데, 여기서 그런 것들을 모두 다룰 여유는 없으므로 이명박 정부가 인식하며 규정하고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제에 국한하여 이야기하기로 한다.
이명박 정부의 시대 인식에는 ‘발전’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는데, 이 발전의 개념은 이중적 의미를 함축하는 것 같다. 하나는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활성화되었다가 사회 민주화 과정에서 소홀히 되었던 (포괄적 의미의) 발전을 다시 회복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화 패러다임의 체제보다 승화된 (세분된 의미의) 발전의 관점에서 새로운 체제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발전의 예시들 가운데 가장 개념적 논리가 드러나는 것은 양보다 질에 바탕을 두는 발전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발전이란 ‘질적 발전’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이렇게 새로운 발전 체제를 갖추어 추구할 국가적 가치로서 ‘선진화’를 설정하였다. 선진화는 한국사회가 당면하는 시대적 패러다임의 사명이고, 정부가 국정을 통해 사명에 부응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산업화→민주화→선진화’로 인식하면서 스스로 국가 선진화의 중심 주체로 나서겠다는 것을 표방하는 것이다. 그 선진화의 구체적 결과로서는 ‘세계일류국가’라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행동 규범으로서 ‘창조적 실용주의’도 표방했다. 또한, 그런 목표와 방법론에 따라 펼칠 국정의 기본적 지표도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편적 이해의 틀에서 재구성하여 다시 표현해 보자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국가 행정 기능의 효율화
② 시장 기능의 활성화
③ ‘능동적 복지’
④ 신체제 인재 양성
⑤ 세계화
일련의 검토를 통해 인지할 수 있듯이 이명박 정부의 비전을 이해하는데 관건이 되는 개념은 ‘선진화’이다. 그 선진화가 얼마나 철학적 가치를 지니는 지에 따라 국정의 비전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논의할 내용이 매우 많겠지만 여기서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요약적으로 정리해 보고 넘어 가기로 한다.
먼저 이명박 정부의 국정 비전으로서 제시된 ‘선진화’의 긍정적 측면을 이야기하자면, 그 개념 자체가 정치적 맥락을 떠나서 원래 보편적으로 긍정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도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치일 수 있고, 그것을 국정에 결합시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가 국정 전반에서 진정한 의미의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주기를 당부한다.
이제 부정적인 측면을 이야기하자면, 선진화의 담론과 목표 그리고 실천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선진화와 연동되는 ‘질적 발전’을 편향적으로 적용하는 데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과거의 시대적 패러다임들로 인식한 산업화와 민주화 가운데 산업화의 축에서는 양적 성장을 질적 발전으로 승화시켜 선진화를 이루겠다고 표방하면서 민주화 축에서는 질적 승화를 고민하지 않는다. 담론의 맥락으로 이해할 때 마치 민주화는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는 모두 이미 완성되었으므로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다는 전제 또는 함의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듯이 민주화의 양적 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형식적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질적 발전에 해당하는 내용적 민주화는 아직 요원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경제적 민주화까지 이루어야 사회 민주화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국정 실천의 행동 규범으로서 표방한 ‘실용주의’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그 편향성과 자의성 때문에 ‘실용’의 토대 자체를 상실하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이 점에 대해서는 따로 지면을 할애하기로 한다.
ㅈ ㄱ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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