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Re:김대중, 국가대전복 반정부선동하나?

vicsteel 2008. 12. 2. 00:29

보통 여기와서 눈팅만 하는데... 어쩌다가 이야기에 끼게 됐네요.

 

개인적으로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이 말씀하신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주희의 성리학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화합하나 부화뇌동해서 줏대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전 그렇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和라는 것은 나와 다른 것을 전재로 합니다. 나와 상반되는 것이 있어야만 화할 수 있으니까요. 다양성과 상대방을 인정한다는 전재하게 맛있는 잡탕찌게를 끓일 수 있다는 말이지요. 不同이라는 말은 하나로 만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싹쓸이 해서 한기지로 통일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군자는 화이부동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모습을 보면 和하지 않고 同하려고만 합니다. 다른이의 존재를 무시하고 나와 같은 모습으로 만들려는 패권주의식 모습을 보이려고만 합니다. 아마도 화이부동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자는 이것을 군자의 도리라고 했다고 봅니다.

 

메트릭스 마지막편에 주인공이 누구더라...키아누 리브스... 아, 네오가 책장으로 뒤덮인 가상의 공간에서 컴퓨터 두목을 만나죠. 거기서 컴퓨터 두목이 책장에서 꺼내는 책이 장 보들리아르의 책입니다. 20세기 후반부터 최근까지 철학과 사회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한번씩 읽었을 법한 책입니다. 신문의 사회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저도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전 개인적으로 이와 비슷한 책으로 60년도 더 됐지만 에리히프롬이 나찌를 피해서 미국 망명시절에 쓴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생각납니다. 현상과 인식과의 과정에서 짜여져 가는 의식의 흐름을 파악함으로써 스스로를 분석하고 경험적 한계를 깨달으면서 올바른 판단을 하게 만듭니다. 단적인 예로 독일 국민 들이 왜 그렇게 히틀러에게 맹목적이었는가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해 놓은 책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건전한 사회‘도 사회를 분석하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좋은 방법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얼마전에 보니까 이 건전한 사회를 번역한 사람은... 70년대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이 해직되고 나서 여관에 살면서 처음으로 한 것이 건전한 사회를 번역해서 돈벌이를 했다고 소개 되더군요. 제3의 길의 앤서니 기드슨이 각 사회의 껍질 들을 비교해 놓은 글 들도 추천 합니다. 앤서니 기든스는 20세기 후반 좌파의 패배를 선언했다고 해서 세계의 우파들을 열광하게 만든 사람입니다. 제 3의 길을 읽어보며 꼭 그런 것도 아니더군요. 한때 언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 3의 길이 아니냐고 한 참 떠들어 댔지요.

 

밑에 댓글 중 생각나는대로 써 봅니다.

 

IMF환란을 김대중 때문이라고 쓰신거... 김대중이가 개혁을 방해해서 그랬다고... 노동법 통과 저지했지요. 전에도 김영삼씨가 여러번 그 노동법만 일찍 통과했으면 환란은 안왔을 거라고 분노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맞은 환란의 본질을 몰라서 그러는 건지, 정치적 처세인지... 환란은 먼저 금융권의 부실부터 시작 됐습니다. 제일은행이 무너지면서 도미노처럼 우루루...심리적 공황상태를 맞게 되었지요. 은행의 부실은 대기업의 부실이 원인이었습니다. 기아자동차, 대우그룹...등등 강제로 공개된 재무재표는 모래위에 세운 집이였죠. 분식회계로 은행으로 빛으로 기업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은행은 계속 그 가루 밀가루를 채워 주게 된거고요. 본질적인 금융구조와 기업 들의 채질개선이 문제였지 노동의 유연성 만으로 이것 들을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되는 것이었지요. 거기다가 우리의 기업들의 기초체력 들이 약해진 것을 안 해외 투자자들이 우루루 자금을 빼 갔고요. 정부는 환란 직전까지도 우리는 튼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솔직하게 밝히고 전 국민적인 단결을 호소했으면 어쨌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카드대란을 말씀 하셨는데, 전 그게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와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업들을 구조조정하고 우량기업 해외에 매각해서 총알 만들었지만, 경제는 소비인데 소비할 사람들이 없으니 이들에게 카드를 쥐어 준 거지요. 대운하도 마찬가집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비를 촉진 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운하 말고 딱히 떠오르는게 없습니다.

 

서해교전 말입니다. 제 기억으로만 적습니다. 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두차례 맞짱뜨면서 서로 감정 많이 상했지요. 특히 유족들과 가족들의 마찰이 엄청 심했습니다. 두 번 다 북한의 꽃게잡이 어선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면서 문제가 되었지요. 서로의 약속에 따라 군함끼리 북방한계선에서 밀어내기의 신경전을 벌이다가 북한이 먼저 총질하다가 교전으로 벌어졌지요. 우리의 사상자가 꽤 되었지만 북한은 두 번다 함선이 침몰하고 함장이 죽어서 아작이 났지요. 사망자만 해도 북한은 교전 때마다 30여명정도가 됐던 걸로 압니다. 화력에서 비교가 안되는데 깝죽대다가 줄행랑한 격이죠. 남북한 전투력의 격차만 확인한 샘입니다. 그리고 맹꽁님 말처럼 남한은 대립의 씨앗을 남겼고요. 보상문제 때문에 유족들이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건 이쪽 분야에 대해서 경험이 많은 제 추측일 뿐입니다. 군대에서 사고 나면 언제나 꼭 이런 식입니다. 나라에 충성한 댓가가 고작 이거냐고. 그런데 그게 어쩔 수 없습니다. 이중배상 금지로 인해서 직무중 사고를 당한 군인 들이 법에 보장된 보상 말고는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 군대에서는 따로 군인 들이 돈 모아서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사망의 경우에는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안돼죠. 그렇지만 이중배상 금지로 소송의 당사자 능력도 없어서 방법이 없습니다.

 

이 이중배상 금지는 박정희가 만든거죠. 월남파병에서 돌아온 병사들이 대대적인 국가배상청구를 하면 국고가 낭비될 거를 대비해서죠. 미국에서 받은 어마어마한 돈은 경제발전에 써야 했습니다. 어렸을 적 영활보면 월남갔다온 안성기가 다리가 절단됐는데도 라디오 하나 달랑 보상으로 들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사망이나 부상당한 병사들도 법에 규정된 보상 외에는 청구를 못하게 법으로 규정 해 놓은게 이 이중배상 금지입니다. 이것이 사법파동의 원인이 되고 유신의 계기가 됩니다. 대법원에서 위헌판결을 내려버린 겁니다. 국가를 희생한 병사들의 핏값으로 경제를 부흥할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분노한 박정희가 위헌판결을 내린 대법관들의 연임을 탈락시키자 대한민국 전체 법관의 3분의 1이 사표를 냅니다. 어쩔 수 없이 박정희는 굴복하고 맙니다. 다음해에 유신을 하죠. 유신헌법에 위헌판결 된 국가배상법의 내용을 집어 넣습니다. 또한 일반법관의 임명권 까지 대통령의 권한으로 규정 합니다. 그리고 사표를 냈던 모든 판사들의 옷을 벗깁니다. 현재 나이먹은 법관들은 그때 사법파동에 동참하지 않았던 분들입니다. 이 이중배상금지 때문에 지금도 군에서 사고만 나면 감정싸움으로 치닷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도영유권 문제는 2004년 경인가  어민들이 위헌소원을 내서 헌재가 정리를 했습니다. 글쓰다가 갑자기 일이 생겼네요.

출처 : Re:김대중, 국가대전복 반정부선동하나?
글쓴이 : 공룡밥그릇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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