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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집시의 시간>

vicsteel 2011. 5. 5. 13:39

 

 

  소설가 이제하 씨는 『시네마 천국』이란 책에서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La Strada)과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Time of the Gypsies)을 세계영화사 최고의 걸작으로 꼽았다. 그분의 의견에 십분 동의한다. 두 영화 모두 내게 엄청난 ‘감동의 충격’을 준 작품이다. 두 영화의 장면 장면이 준 기억은 너무나 강렬하여, 치매가 오지 않는 한 내가 죽는 날까지 갈 것이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이 세상에는 ‘악’이 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선’이 지독한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연약한 여성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감독을 냉철하게 지켜볼 뿐이고, 관객은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끼며 영화관 문을 나서는 것이다.

 

  몇 가지 자료를 찾아내어 이 자리에 올린다.

 

  1.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유고슬라비아의 감독 에릴 쿠스트리차의 1989년 영화로 집시들의 삶과 애환을 그렸다. 다보르 듀모빅, 보라 토도로빅, 리주비카 아드조빅 등 연기 경험이 없는 실제 집시들이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다.

 

  유고의 어느 집시 마을에 사는 소년 페란은 자상한 할머니와 다리를 저는 어린 여동생 다니라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페란은 이웃에 사는 아즈라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페란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페란의 할머니가 병에 걸린 아메드의 아들을 심령술로 고쳐주자, 아메드는 그 대가로 다니라의 다리를 고쳐주겠다고 하여 페란과 다니라는 집을 나선다. 그러나 아메드는 다니라의 다리를 고쳐 주지도 않고, 페란을 자신의 범죄 조직에서 이용해 돈벌이를 한다. 순수했던 집시 소년 페란은 집을 떠나 세상의 탐욕을 경험하면서 차츰 타락해 간다.

 

  집시 특유의 민족적 정취가 짙게 배인 이 영화에서 쿠스트리차 감독은 토속적인 미신과 신비주의를 혼합하여 모든 것이 정처없이 떠도는 듯한 인상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초월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산문적인 것과 시적인 것들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도록 조율하였다. 연기 경험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글도 모르는 진짜 집시들을 출연시켜 만든 이 작품은 전체 분량의 90% 가량을 집시의 방언인 로마니어로 촬영하였다.

 

  감독은 집시의 경험을 스크린에 옮기면서 시각적인 디테일과 그들의 음악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음악을 담당한 고란 브레고빅은 감독의 이러한 의도를 살려, 아코디언과 피리 합주를 기본으로 한 집시음악을 영상과 훌륭하게 조화시킴으로써 영화의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고조시키고 있다. 1989년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2. 홍성진 영화 해설

 

  이그리주(Igraju). 집시 어머니에게서 사생아로 태어난 10대 소년 폐란은 할머니 하티자에 의해 자라난다. 하티자는 심령 의술을 행하는 사람인데, 다리를 저는 여동생 다니라와 방탕한 생활을 하는 숙부와 함께 살고 있다. 폐란은 이웃 처녀 아즈라와 사랑에 빠지나 그녀의 어머니는 폐란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병에 걸린 아메드의 아들을 하티자가 심령술로 고쳐주게 되자, 아메드는 그 대가로 다니라의 다리를 고쳐주겠다고 해 폐란이 동행하여 처음으로 집을 떠나게 된다.

 

  다니라를 입원시킨 후 아메드는 폐란을 데리고 이태리로 가 아주 극악한 행위를 강요한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처음으로 돈을 만지게 된 폐란, 그러나 그는 큰 불안감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견딘다. 아메드는 이러한 폐란의 동요를 알지못하고 그를 최고의 동업자라고 부르며 폐란을 새롭게 단장시키며 새로운 사업을 찾아준다. 또한 보너스라는 명목으로 고향에 저택을 지어주겠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메드가 다니라의 다리도 고쳐주지 않았고 더구나 행방도 모른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배신감을 느낀 폐란은 유고의 고향으로 돌아오나 아메드가 약속한 집도 거짓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었다. 한편 아즈라는 폐란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으나 폐란은 믿지 않는다.

 

  아즈라는 사내아이를 낳은 후 숨을 거두고 폐란은 그녀가 아이 때문에 죽었다고 원망하며 아이를 버린다. 그후 폐란은 다니라를 찾기 위해 이태리를 헤매다, 로마에서 우연히 상봉한다. 다니라는 아메드 밑에서 거지 동냥으로 일하고 있었다. 다니라가 보살피고 있어 아들도 만나게 된 폐란은 아들의 눈을 통해 자신의 혈육임을 깨닫게 된다. 폐란은 삶을 반성하고 결혼식이 한창인 아메드에 대한 복수를 계획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초자연적 힘을 이용해 포크를 날려 그를 죽인다. 달아나던 폐란은 아메드의 부하가 쏜 총에 맞고 결국 숨을 거둔다.

 

 

  3. ‘보헤미안’의 관람평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집시의 시간>. 이 영화는 단순히 페란이라는 한 소년의 비극을 나타내려고 한 것은 아니다. 페란의 인생은 시대를 거치며 곳곳으로 방랑하고 유랑하며, 타민족 타문화에 휩쓸리고 억압 받아야 했던 집시민족의 운명을 대표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치 그렇게 되도록 운명지어진 듯 비극의 인생을 살아왔던 주인공처럼, 집시들이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집시의 시간-마저 잃어버리게 된 것 역시, 집시민족에게 운명지어진 삶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러닝타임이 끝나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을 보여주는구나.’ 완벽한 캐릭터, 스토리텔링, 상징과 은유, 그리고 미장센의 집합체였다. 하지만 이런 테크니컬한 요소를 떠나 진정 인상적이었던 점들은 삶에 대한 풍부한 통찰과 해학 그리고 아이러니를 다루는 능수능란함이다. 지옥 같은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어깨가 들썩이는 흥겨움 속에서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내재된 진흙 속의 연꽃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영화가 마술임을 알고 있는 ‘시네아스트’ 에밀쿠스트리차의 영화에는 이상한 전율의 순간이 있다. 그는 일상생활 속에서 영화를 만들고, 그의 카메라는 리얼리즘을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바로 어느 순간 그의 영화는 이상한 곳에 가 서 있다. 말하자면 쿠스트리차는 그의 카메라로 마술 부리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아차 하는 순간에 우리를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간다. 그러나 그건 불쾌한 속임수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기는커녕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영화에서 오랫동안 꿈꾸어 온 것이 아닌가?

 

  쿠스트리차는 1981년 데뷔작 <돌리 벨을 아시나요>로 베네치아영화제 은사자상을 받았고, 이어 1986년 <아빠는 출장 중>으로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았다. 그는 자신이 예술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세계의 질서 사이 그 어딘가에 있을 진실의 입구를 찾는 사람이라고 거듭 인터뷰에서 대답했었다. 그리고 1989년에 다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집시의 시간>은 바로 그러한 작품이다. 그는 과장한 것이 아니었으며, 이 영화는 마술 같은 감동을 안겨준다.

 

출처 : 이승하
글쓴이 : 이승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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