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최지 선정에서부터 심판 판정까지, 전혀 순수하지 않은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단상.
소치 동계올림픽은 여러모로 시사점이 많은 스포츠 이벤트다. 애초에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소치가 선정된 것부터가 그렇고,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빅토르 안(안현수)의 금메달과 김연아의 은메달이 보여주는 다양한 함의가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올림픽을 비롯한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전혀 순수하지 않으며,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둔 우리에게도 이런 현실은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멋진 연기를 펼친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 좌절에 다들 기분이 많이 상하겠지만, 좀 더 냉정하게 전체 흐름을 보면, 사실 이 정도 일은 그리 충격적인 일 축에도 못 낀다. 여러 가지 정황상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일이기도 하고, 김연아 본인도 놀라기는 했겠지만 스포츠 이벤트에 수없이 참가한 경험이 있는 직업선수로서 아마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닐 것이다. 정말 안타깝지만, 단순히 욕하고 흥분하기보다 차라리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게 문제 파악에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진자료: 연합뉴스]
아열대 휴양지가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우선, 기본적인 사실 관계부터 확인하고 넘어가자.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동계올림픽 개최지와는 달리, 소치는 아열대성 기후에 속하며 흑해 연안 휴양지다.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를 자랑하는 곳으로, 러시아에서 가장 따뜻한 지역이라고 한다. 뭔가 굉장히 이상하지 않은가? 어떻게 이런 곳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될 수가 있었을까? 한번 상상해 보라. 한국에서 가장 따뜻한 지역인 제주도에서 동계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당연히 얼토당토않고, 그래서 우리는 가장 추운 지역인 강원도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을 개최한다.
어째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에 대한 얘기를 좀 해야 한다. 다들 알다시피, 소치가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2007년에도 러시아의 대통령은 푸틴이었다. 그는 평창을 비롯한 경쟁도시에 비해 2배나 많은 예산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제시했고, 이런 독재자의 큰소리는 실제로 IOC위원들에게 먹혀들었다. 심각한 테러 위협과 소치의 아열대성 기후도 푸틴의 돈과 권력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러니 소치가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 과정 자체가 지극히 정치적인 선택이었던 셈이다.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도 1936년 베를린 하계올림픽을 노골적인 정치 이벤트로 활용했다]
결국 우리는 지금 소치올림픽을 보고 있는데, 사실 지난해 12월에 소치로 들어가는 교통요지라는 볼고그라드에서는 기차 역사와 버스 안에서 잇따라 자폭 테러가 발생해 34명이 숨지고 60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심각한 사건이 실제로 발생하기도 했다. 당연히 올림픽 안전에 비상이 걸렸고, 러시아는 테러 위협 대비를 위해 무려 2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었다. 미국과 영국은 선수들에게 단복을 입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고, 호주는 선수단에게 소치 여행 금지령까지 내렸다. TV에서는 소치의 밝은 면만 보여주지만, 현실의 소치는 절대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해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 절반 정도만이 올림픽 개최에 긍정적이며, 3명 중 1명은 정부 당국이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고 올림픽을 개최했다고 생각했다. 러시아는 소치올림픽 준비에 역대 최대 규모인 500억 달러(54조 원,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의 3배 ·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10배가 넘는 비용)를 투입했는데, 러시아 국민 절반은 이것이 올림픽 시설 건설 과정에서 부패와 비효율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200억 달러 정도가 뒷돈과 뇌물 등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이 무성하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소치올림픽은, 개최지 선정부터 준비과정 자체가 '페어플레이'와는 전혀 상관 없는 돈과 권력의 이벤트인 셈이다.
[이미지 출처: 프레시안]
빅토르 안과 김연아,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얘기들
이제까지 워낙 많은 말들이 나왔으니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지만, 안현수에 대해서는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3관왕에 오른 안현수가, 도대체 왜 러시아로 갔는가? 여기에는 개인적인 이유에서부터 빙상연맹의 조직적인 전횡까지 여러 가지가 얽히고설켜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좀 살펴봐야 할 듯싶다. 바로 한국 엘리트 체육의 근원적인 병폐인데, 엘리트 선수들이 생활체육과는 완전히 유리된 채 그저 운동하는 기계로 젊었을 때 반짝 금메달을 따는 '일회용' 취급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안현수도 금메달을 땄을 때만 영웅 대접을 받다가, 2008년 1월 갑작스런 부상 이후에는 전혀 아무런 보살핌도 받지 못했다.
[안현수 아버지 "그때 현수가 재기할 수 있도록 빙상연맹에서 도와줘야 했다 ... 다치니까 나몰라라 하는 식으로 신경 쓰지 않은 게 너무 섭섭했다"]
그리고 (아무리 김연아 같은 스포츠스타라고 할지라도) 선수들이 다른 학생들과 다름 없이 정규 수업을 받아야 하고 선수가 공부에 소홀하다가 평균 이하로 성적이 떨어지면 운동이 금지되기도 하는 스포츠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의 운동부 학생들은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배려'를 전혀 받지 못한다. 다른 걸 신경쓸 여유를 아예 주지 않고 무조건 운동만 시키는 학교의 운동부 시스템으로 인해, 서로간의 인간적인 교류가 불가능함은 물론 학생 선수들은 그 나이에 받아야 할 기본적인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청소년기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결국, 오직 운동만 하다가 현역생활이 끝난 비인기 종목 출신 선수들은 도대체가 이후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처지에 빠지고 만다.
그러니까 대학의 체육특기생 선발과 같은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고 온갖 부정부패가 만연하며, 각종 체육연맹의 전횡이 아무리 많은 문제를 양산해도 절대 고쳐질 수가 없는 것이다. 연맹의 고위임원이나 유력 감독의 눈 밖에 나면 그 순간 선수생명은 끝이고, 이런 상황이 고착화되면 될수록 소위 말하는 파벌이나 줄세우기가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안현수 사태를 낳은 빙상연맹도 이와 같은 환경이 만든 괴물이며, 2012년 6월 발생한 김연아의 교생실습 관련 논란도 전체 맥락에서 보면 결국 비슷한 문제다. 한국사회가 엘리트체육 중심에서 생활체육 중심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제2의 빅토르 안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이건 단순히 체육연맹 몇 개를 일시적으로 감사해서 처벌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안현수 사태가 국내 스포츠계 선수관리의 문제라면,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 실패는 세계 스포츠계의 전반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것 역시 앞으로 많은 얘기들이 나오겠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이후 20년 동안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가져가지 못한 유럽이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의 심판진을 모두 유럽 쪽 사람들로 채웠고, 김연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클린'에 가까운 경기를 펼친 유럽 선수들에게 대놓고 후한 점수를 준 것이다. 다른 곁가지들이 많겠지만, 결국 핵심은 이거다.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분통 터지고 할 얘기가 많겠지만, 사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자본과 권력에 항복한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절대 순수하지 않고, 여기에 관계된 수많은 스포츠인들 역시 그렇다. 그리고 이것 자체를 정식으로 문제삼기도 어렵지 않나? 개최지 선정 자체부터가 정치적인 스포츠 이벤트에 뭘 더 기대하는가? 또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볼 필요도 있다. 만약 김연아가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한다면, 과연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평창은 과연 소치와 다를까?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생각해보면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미지 출처: 머니투데이 <남아공 더반에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발표되는 순간 이건희 IOC 위원이 감격스러워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건희 IOC위원(삼성 회장), 이 회장의 둘째 사위인 김재열 대한빙상연맹회장>]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올인의 진짜 이유는?
한국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은 여러 가지 의미로 참 대단했다. 우리 사회는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동계올림픽 유치를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며, 올림픽 유치 도전을 계속하는 것과 관련한 몇몇 사람들의 부정적인 견해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적어도 한 10년 정도는 동계올림픽 유치에 애썼던 것 같고, 결국 성공한 다음에는 많은 사람들의 성찬이 있었다. 그런데 과연, 지금 러시아 국민들이 소치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우리가 2018년에 평창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많이 다를까?
관련 기사에 따르면, 대관령면 용산리와 횡계리에는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용평리조트와 알펜시아리조트가 있어 동계올림픽 유치전이 시작된 2000년 이후 땅투기 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재벌가와 대주주 관련 인사들이 보유한 땅은 대부분 동계올림픽 개최지 근처이며, 구입 시점 역시 2000년 이후란다. 한마디로 대주주 관련 인사들과 재벌가가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강원도 평창군 일대 '노른자위 땅'을 올림픽 유치전 시작 즈음에 대량으로 구입했고, 실제로 이들이 보유한 땅의 가격은 단 몇 년 사이에 무려 10배 이상 급등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상장사와 비상장사 대주주·특수관계인들은 대부분 2000년대 초중반에 평창 근처 토지를 구입했는데, 과연 이게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 올인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수많은 기업과 언론들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열을 올렸고 일반 시민들도 덩달아 큰 관심을 보였는데, 재벌들의 평창군 일대 부동산 매입과는 도대체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만약 대주주 관련 인사들이 동계올림픽 개최지의 땅을 사지 못했다면, 한국이 무리하게 계속해서 동계올림픽 유치전에 뛰어들었을까? 소치는 동계올림픽 개최에 500억 달러를 썼고 그 중 200억 달러가 뇌물과 뒷돈으로 들어갔다는데, 평창은 과연 어떨까? 알펜시아리조트와 용평리조트의 땅투기 바람은 지금 어떻게 됐는가? 러시아와 한국이 정말 다른지,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올림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시대에 막강한 권력과 거대 자본이 개입하지 않는 스포츠가 있는가?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거대 자본과 막강한 권력이 없이는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프로 스포츠도 따지고 보면 거대 자본을 가진 스폰서가 없이는 애초에 유지되기 힘든 구조이고, 하다 못해 체육특기자 선발에도 권력 놀음이 빈번하게 자행된다. 거대 자본의 최대 관심사는 흥행이며, 그 흥행을 위해서 경기의 룰이나 시간까지 조정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소치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인데, 지금 우리는 소치올림픽을 보며 모두들 울고 웃는다. 이걸 푸틴에게 감사해야 하나?
마지막에는 좀 건조한 얘기를 하면서 끝낼까 한다. 스포츠만큼 인간이라는 존재의 자체적인 능력을 극단적으로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행위가 또 있을까?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아무리 인간의 능력을 최대로 향상시킨다고 하더라도 그 해당 분야의 일만 하기 위해서 특별히 고안된 기계를 이기지는 못한다. 어쨌거나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또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보여주는 퍼포먼스도 차이가 나며, 때론 실수도 한다. 그런데, 요즘 스포츠를 보면 대부분의 종목이 인간의 한계에 거의 다 다다른 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이제는 스포츠에도 소위 말하는 과학이 전면적으로 도입된 상태다. 과학을 이용해 기록을 단축시키고, 과학을 이용해서 순위 판정을 한다. 스포츠과학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조건 돈이 필요하고, 엄청난 예산을 투입한 스포츠과학은 각 인간의 능력을 인간 자체의 인식 범위 내에서는 절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까지 미세하게 분류해서 승패를 나눈다. 그리고 경기장 현장에 직접 설치된 수많은 컴퓨터와 수십 대의 카메라가 심판을 대신해서 판정을 내리기도 한다.
이와 동시에 스포츠는 점점 더 인간의 손을 떠나가고 있다. 인간이 아닌 과학이 판정한 순위에 따라, 어떤 인간은 웃고 어떤 인간은 눈물을 흘린다. 자본이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면 미칠수록 또 흥행에 더 민감해지면 민감해질수록, 스포츠의 본질은 점점 희미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과학기술과 자본과 권력이 장악한 올림픽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즐기고 느끼고 있는가? 어쩌면, 몇 십년 뒤의 올림픽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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