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은 당 안팎으로 강도 높은 '혁신(쇄신)'을 요구받고 있다. 박영선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된 가운데, 그를 주축으로 꾸려질 비상대책위원회가 그 임무를 맡게 됐다. 지난 5일, 박 위원장은 "당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무당무사의 정신에 무민무당 국민이 없으면 당도 없다는 정신으로 임하겠다. 당의 전면적 혁신과 재건을 담당할 비상대책위원회의 명칭은 가칭 '국민공감 혁신위원회'로 출발하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사'다. 국민공감 혁신위원회는 당 내부 인사와 외부 인사가 5 : 5의 비율로 구성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초재선과 중진, 원외 인사를 균등하게 안배하고, 계파 간의 배분에도 신경을 쓸 것이라고 한다. 외부 인사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지 않은 이상, 안배와 배분은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재현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처럼 내부적 수리에 정신이 없어야 할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정의당과의 합당'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우선,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은 추대 후 첫 기자회견에서 정의당과의 통합 논의에 대한 질문을 받자 "열린 마음으로 생각해보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말이었지만, 박 비대위원장이 이런 애매모호한 표현을 쓴 까닭은 당 내에 그러한 목소리가 있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아니나다를까, 지난 5일 새정치민주연합의 설훈 의원은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서 "앞으로도 우리당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려면 정의당과 통합을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의당에 있는 심상정 등등의 국회의원들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과 생각이 거의 같다. 물론 통합진보당과는 분명히 선을 그어서 다르지만 교문위 정진후 의원 같은 분은 거의 우리당과 생각이 같고 행동도 같이 하고 있다. 굳이 당을 갈라야 할 이유가 있느냐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통합의 파트너로 지목되고 있는 정의당의 입장은 어떨까? '당연하게도' 정의당은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정미 대변인의 말을 들어보자. "(정의당은)이번에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전국단위 선거를 처음 거쳤고 (재보선을 통해)국회의원 선거도 처음 치렀다. 2016년(총선)까지 어떻게 나아갈지 내적인 고민이 깊은 상황이므로 우리당 입장에선 당 바깥에서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협력과 연대는 이어나가겠지만, 통합까지 논의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퇴짜를 놓은 것이다. 물론 당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노회찬 전 의원이 7 · 30 재보궐 선거에서 나경원 의원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정작 당의 지지율은 창당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4일 공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 정의당은 6.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지난 5월에만 해도 1.4%에 지나지 않았던 지지율이 6월과 7월에 4%대를 진입 · 유지했고, 이제는 6%를 넘어선 것이다. (역대 최고치는 7.5%)
지지율 만으로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정의당이 새정치민주연합과의 통합에 그리 쉽게 응할 리가 만무하다. 물론 이를 '몸값 불리기'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만약 필자가 정의당의 대표라면 어설픈 '몸값 불리기'를 통해 죽음을 자초하진 않을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만약 '지금' 통합이 이뤄진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제2의 불쏘시개로 소모된 정의당'
지난 3월 2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통합 신당을 창당하는 데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당시만 해도 '역사적인 사건'이라 불리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두 사람 간의 정치적 결단(혹은 정치적 야합)을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새정치민주연합'이다. 통합의 효과는 100점이었다. 당시 '리서치뷰'의 여론조사 결과, 통합신당(당명을 정하기 전)의 지지율은 41%까지 수직상승했다. 43.3%를 기록한 새누리당과과 오차 이내의 박빙을 이룬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내의 일부 의원들이 '정의당과의 통합'을 외치는 까닭은 '통합 효과'를 통해 '위기'를 탈출하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통합의 효과는 이미 안철수 의원과의 통합에서 경험한 바 있으므로 이번에도 같은 수준의 '재미'를 볼 것이라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필자도 이러한 효과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야권 지지자 중에는 '야권 연대'에 신물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은 차라리 당을 하나로 합쳐서 1 : 1 구도로 제대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은 결국 안철수와의 통합도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물론 안철수 개인의 정치적 능력의 한계가 분명했다 하더라도, 세력과 조직이 사실상 전무했던 안철수 전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얼굴마담' 정도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고 속성으로 이뤄지는 통합은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과연 정의당이라고 다를까? 심상정, 노회찬이라고 하는 간판 정치인이 있긴 하지만, 이들도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에 포함되는 순간 한 명의 정치인에 불과할 뿐이다. 더욱이 조직적 열세에 놓여 있는 정의당은 목소리 하나 내보지 못하고 묻혀버릴 것이 분명하다.
한편, 지난 5일 새정치민주연합의 정동영 상임고문도 "2017년 진보정권 창출을 목표로 야권 재편 전면화를 선언해야 한다"면서 사실상 정의당과의 통합을 주장하고 나섰다. '야당, 어디로 가야 하는가' 토론회에 참석한 정 상임고문은 "왜 우리는 '진보'라 말하기 두려워하는가. 당당하게 진보를 얘기하고 당당하게 진보적 야당의 길을 가야한다. 그것이 승리의 길이다. 지금 당헌과 강령에서 사라진 진보적 가치를 명확히 선언해야 한다"며 당의 정체성과 노선을 '진보'로 재설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당의 혁신을 기반으로 노선과 정책 중심의 '야권재편'을 전면화해야 한다. 누구와의 연대가 아니라 '무엇을'위한 연대인가를 명확히 해야한다. 진보적 야당을 넘어 야권재편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지난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절치부심했던 정 상임고문은 그동안 정치적 욕심을 철저히 버리고 시민들과 함께 현장을 지켰다. 처음에는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 그 누구도 그의 진심을 곡해하지 않는다. 그가 '진보'를 말하는 것에 불쾌감을 드러낼 사람은 없으리라.
장기적으로는 '통합'이 정답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정동영 상임고문의 고민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 시점은 '지금'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자체적인 혁신이다. 내부적인 변화 없이 또 다시 외형적인 몸집 불리기로 곪아터진 환부를 감추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해선 안 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 기회를 통해 제대로 된 혁신을 이뤄내고, 당의 노선과 정책을 '진보'로 설정하고 그 가치를 향해 나아간다면 그때야말로 '야권 재편'을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5일 JTBC <뉴스 9>에 출연한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은 "정강정책의 변화도 있습니까?"라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새정치민주연합의 당헌당규가 과거의 민주당 시절과는 많이 바뀌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강정책까지 바꿔야 될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게다가 그가 밝힌 '청사진'은 지나치게 추상적이었는데, 역시 큰 기대를 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언론이 계속해서 '통합'에 대해 바람을 잡는 것을 보면, 새정치민주연합 내에 통합파의 목소리가 꽤나 커진 모양이다. 하지만 정작 새정치민주연합은 '진보'를 향해 머리를 돌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통합'을 말하는 것은 단순한 몸집불리기를 해서 시선을 끌겠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결론은 나왔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과 '통합'하면 '정의당'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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